인형극이 최첨단 예술이던 시절, 이라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23년 11월, 장소는 도쿄 아자부(麻布), 무대 조명가 토오야마 시즈오(遠山静;1895‐1986)의 저택에서 선보인 〈아그라벤느와 세리세트〉(모리스 메테르링크 원작) 시연회는 인형극의 "새로움"을 믿어 의심치 않는 젊은이들의 실험이었다. 후에 인형좌(닝교자人形座)라고 명명한 이 젊은이들 중에는 형제이기도 한 무대 미술가 이토 키사쿠(伊藤憙;1899‐1967)와 연출가이자 배우인 센다 코레야(千田是也;1904‐1994)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 시연회가 일본 "현대 인형극"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들은 유럽의 동시대 연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특히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Edward Gordon Craig;1872‐1966)의 연극론 〈배우와 초(超)인형〉(1907)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배우는 떠나고 그 대신 초인형이 등장해야 한다"는 과격하고 매력적인 주장으로 알려진 이 연극론은 최첨단 예술을 모색하던 이토 키사쿠들에 큰 영향을 주어, 훈련이 필요한 (실을 연결하여 조종하는) 줄 인형극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서양으로부터 일본 인형극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일담으로, 1894년 다크 (D'arc) 인형극단의 일본 방문에 대해서도 언급 할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 도래한 인형극에는 여러 개의 섬뜩한 해골이 등장해 조명이나 음악에 맞춰 코믹하게 춤을 추는 장면 등, 닌교죠루리(人形浄瑠璃)나 유우키자(結城座)의 줄 인형극과 다른 새로운 면을 선보여 많은 관객을 모았다. 또한 당시 가부키를 대표하는 배우 5대 오노에 키쿠고로(尾上菊五郎;1844‐1903)가 다크 인형극에 자극을 받아 인형의 움직임을 도입한 가부키를 공연한 기록도 보인다. 다크 인형극단의 일본 공연은 이후 인형극이 새로운 예술의 일익을 담당할 것을 예감하게 하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