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동연극(직업/성인 배우가 아이들 관객을 위해 만들고 상연하는 연극)은 '어린이'라는 개념을 창출한 유럽의 근대 사상과 아동문학 아동연극에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카와카미 오토지로(川上音二郎;1864-1911)와 그 극단이 1903년 10월에 혼고자(本郷座)에서 공연하여 호평을 받은 오토기 시바이(お伽芝居;아동연극) <들뜬 호궁(胡弓) >과 <여우의 재판>을 효시로 삼는다. 그 뒤 오토기 시바이는 일본 최초의 아동 연극 전문 극단 "오토기 (お伽)극단"의 창설(1906), "유라쿠자(有楽座) 어린이날"(1909-1920)과 제국 극장 "가정 오락회" (1916-1928)의 오토기 시바이 공연, 다카라즈카 (宝塚)소녀 가극의 오토기 시바이 공연(1914-1930) 등을 통해서 확산되어 갔다.
1920년대 오토기 시바이는 아동 잡지 <붉은 새>(1918-1936)에서 유래한 동심주의(童心主義)에 영향을 받아 "동화극"이라 불리우게 되며, 내용도 봉건적인 교훈 연극에서 시민 사회에 기초한 드라마로 변모했다. 민중 극장(民衆座)이 1920년에 "동화극"의 이름으로 상연한 모리스 메테를링크 원작의 <파랑새>가 그 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유럽 연극의 영향을 받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사나이 카오루(小山内薫; 1881-1928)가 코스즈메자(小壽々女座)와 츠키지(築地)소극장에서 적극적으로 아동 연극의 창작과 연출활동을 했다.
1930년대에는 극단 토도(東童)를 필두로 아사노 아동극 학교, 테아틀 피콜로, 와카바(若葉)동화 극단 등 다채로운 아동연극 극단이 탄생하여 활약하였다. 당시 일본은 심각한 경제불황과 사회 불안을 겪고 있어서 아동 연극의 제작자들은 아이들에게 '꿈'이나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연극의 창작 방법에서는 현실을 강조하는 리얼리즘 지향을 의미하며, '아이 역을 아이가 맡고 어른 역을 어른이 맡는 아이들과 어른이 공동으로 만드는 연극'이야말로 아동 연극의 리얼리즘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영향 아래의 1940년대에 들어서면, 아동 연극은 1941년에 창설된 "일본 소국민 문화 협회"의 "소국민 연극 교실" 등 아동문화의 통제와 적극적인 전쟁 협력 추진을 목적으로 변모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