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외일 수 있지만, 인형을 통해 정치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토오야마 시즈오(遠山静;1895‐1986) 저택 시연회에 참가한 멤버를 중심으로 결성된 인형좌(人形座)의 첫 공연 〈누가 가장 바보인가〉(칼 아우구스트 위트포겔 원작)는 자본가를 공격하는 내용으로 좌익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 등으로부터 평가받고 있었다.
특히 전위 예술가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1901‐1977)는 인형좌(人形座) 공연을 보고 자신도 〈치마를 입은 네로〉〈역시 노예다〉와 같은 인형극용 희곡을 집필하는 등 인형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영화, 연극, 인형극, 건축 등 서로 다른 예술 영역의 전문가들을 모아, 1925년 츠키지(築地) 소극장에서 공연한 "극장 삼과(三科) "의 상연목록 중 하나로, 무라야마 토모요시가 작·연출을 맡은 〈아이를 낳는 매춘부〉에 인형을 등장시켰다.
그 뒤 1940년경이 되면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1945년 해산된 국민 통제 조직)가 조직되어 예술의 정치적 이용의 일환으로 인형극도 동원된다. 전쟁 전에는 예술을 지향하고 좌익적인 사상을 전파하는 것으로 주목받던 인형극이 전쟁 중에는 누구나 공연할 수 있는 간편함이 중용되어 국위 발양을 위한 선전 도구 역할을 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대중을 즐겁게 하는 오락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주장을 전달하는 광고 매체로서 조종자의 의도에 따라 이용된 것도 인형극의 간과할 수 없는 성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