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현대 연극은 능숙하게 말하는 힘을 발휘하는 극작가들을 끊임없이 배출해 왔다. 많은 극작가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사상, 욕망과 불만을 내포하면서도 시대마다 지역마다의 사건과 인간의 모습을 회화극을 빌어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서 영향력 있고 재능 있는 극작가를 모두 소개하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은 없지만, 본 전시와의 관계성 등을 고려하여 “말하는 힘”이 풍부한 극작가를 선택하여 소개한다.
부조리극의 황야를 담담하게 개척해 온 81세 현역 베츠야쿠 미노루(別役実). 쇼와(昭和 1926~1988)기의 소박한 풍경과 시정(詩情) 넘치는 대사에서 일순간에 스펙터클성이 높은 극적 공간을 표출시키는 카라 쥬로(唐十郎). 거대한 역사 속의 작은 인간의 말을 아름다운 대사로 승화시킨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소동을 뛰어난 독설과 웃음으로 엮어낸 마츠오 스즈키(松尾スズキ). 다양한 코미디를 거쳐 웰메이드 인간 드라마와 난센스를 나란히 쓰게 된 케라리노 산드로비치(ケラリーノ・サンドロヴィッチ). 개발로부터 남겨진 지방 도시에 살면서 이미 일발 역전의 기회도 없는 사람들의 폐쇄감을 유머를 섞어 그리는 아카호리 마사아키(赤堀雅秋). “지금부터 연극을 하겠습니다”라고 시작을 선언해 연극의 구조를 흔드는 것으로 오히려 픽션의 힘을 회복시킨 오카다 토시키(岡田利規). 어느 토지에 대한 단편을 몇 편 쓰고 역스핀오프와 같이 본편을 만드는 야기누마 아키노리(柳沼昭徳).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의 틀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불가사의를 끈기 있게 연극화하는 미우라 나오유키(三浦直之). 말투는 다르지만 회화극의 선도와 강도는 이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