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대학 츠보우치박사기념 연극박물관은 아시아 유일의 연극 영상 전문 종합박물관으로서 일본 연극 관련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의 다종다양한 연극 장르의 자료를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무대예술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지금까지도 많이 기획해 왔지만, 이번처럼 월경(越境)적 시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전시는 처음 시도하는 것입니다.
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소설을 각색 번안한 연극 작품들도 원작의 지역성, 문화, 언어 등의 벽을 넘어 다양한 표현 미디어에 의해 폭넓게 중화권 각지와 일본에서 제작되어 관객을 매료 시켜 왔습니다. 본 전시는 일본, 중국, 대만의 「삼국지」 연극을 한자리에 모아 각각의 매력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공연장에 발길을 옮기는 것이 어려운 지금, 무대를 관람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이 전시에서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전시 개최에 있어 다대한 협력을 해 주신 관계자분들, 특히 본 전시를 위해 『삼국지』 관련 공연의 귀중한 사진 화상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신 대만국광극단(臺灣國光劇團)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0년 9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3세기 중국에서 위・촉・오의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에 나관중이 ‘삼국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 읽히는 삼국지는 청(淸) 초기의 모종강이 정리한 『모종강비평 삼국지연의(毛宗崗批評三國志演義)』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일본의 삼국지는 모종강본에 한 단계 앞선 명 말기의 『이탁오선생비평 삼국지(李卓吾先生批評三國志)』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것을 에도 시대의 코난 분잔(湖南文山)이 번역한 『통속삼국지(通俗三國志)』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소설 『삼국지』 등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관우의 ‘한수정후(漢壽亭侯)’와 같은 허구의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유명하기도 합니다.
‘삼국지’의 시대는 불과 60여 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고대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한(漢)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전란의 시대에 접어든 중국의 역사상 일대 전환기입니다. 그 무렵 일본도 히미코(卑彌呼) 시대를 맞이하여 변혁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동란기에 나타난 수많은 군주, 장수, 그리고 군사(軍師)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충돌하며 대의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결코 같은 법이 없이 실로 다종다양합니다. 후세의 우리들은 예를 들면 군사로서 비길 데 없는 지략을 겸비한 제갈량이 유비에게 충의를 다하는 생애에 감명을 받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유비와 관우, 장비의 군신 관계를 뛰어넘는 우정에 눈물짓기도 합니다. 혹은 조조의 희대의 악역과 함께 넘치는 재능과 과감한 결단에 갈채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각자의 감성에 따라 좋아하는 인물에 몰입하여 자신만의 ‘삼국지상’을 맺어 갈 수 있는 것, 이러한 포용력이야말로 삼국지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1700여 년 전 중국 내전을 취재한 「삼국지」 이야기는 난세를 헤쳐나간 개성 넘치는 명사, 장수, 여성들의 분투 상을 선명하게 묘사하여 세계인들을 매료 시키며 절대적인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근세 이래 중국에서 「삼국지」 이야기가 널리 유포된 것은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등의 서적 외에, 일본의 강담(講談)에 상당하는 ‘설화’와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등장인물이 관객 앞에 생생하게 모습을 보여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과 같은 미디어에 힘입은 바도 클 것입니다. 현대 일본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소설 외에 연극과 마찬가지로 리얼리티 넘치는 요코야마 미츠테루(横山光輝)의 만화와 NHK 인형극 『삼국지』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민족 다문화로 구성된 아시아권에서는 다종다양한 연극 양식 및 그 풍부한 표현력이 백화요란(百花燎亂)한 연극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각 무대 예능의 특성 및 문화적 해석에 따라 각 지역 무대에서 탄생한 「삼국지」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본 전시에서는 각자의 연극적 맥락 속에서 태어난 삼국지 캐릭터의 특징과 매력을 알리기 위해 전시실이라는 한 무대에 함께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연극박물관 컬렉션에서 정선한 의상, 인형, 니시키에(錦絵) 등 다양한 연극 자료를 한자리에 모아 일본, 중국, 대만의 무대에서 활약한 「삼국지」 풍운아들의 매력을 전합니다.
또한 본 전시에서는 「삼국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에게도 주목했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연환지계(連環之計)에 등장하는 미인 '초선', 문무를 겸비한 ‘손(상향)부인’, 유비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은 ‘미부인’ 등 남성 중심의 치열한 싸움 뒤에서 자신의 삶을 관철한 여주인공들도 조명하여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던 그녀들의 의연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삼국지」를 다각적 관점에서 조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삼국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현되고 있습니다. 구전 문예와 서적, 근세 이후의 연극, 현대의 TV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축되어 온 「삼국지」의 세계와 인물상 및 그 매력은 각각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것입니다.
「삼국지」 속 인물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전투와 지략을 펼치는 장면을 재현하는 데는 연극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삼국지」 연극의 출현은 12, 13세기 남송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이 연기하는 양식뿐만 아니라 인형극이나 그림자극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14세기 이후 연극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삼국지」를 각색한 많은 작품이 등장했으며,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계속 상연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성숙해진 경극은 초기에는 노생(老生; 중년 이상 남성역)이 주역이었기 때문에 노생역이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삼국지」 연극도 자연스럽게 경극의 대표적인 공연군이 되었습니다.
「삼국지」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중국 이외의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삼국지」 이야기를 상연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각지에서 새로운 공연 양식과 등장인물이 창출되었습니다. 경극의 영향을 받은 대만의 인형극 '포대희(布袋戲)'에서는 한 손으로 인형을 조종하여 더욱 생동감 넘치는 「삼국지」의 풍운아들을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가부키에서는 독자적 해석에 의한 인물 설정을 시도했습니다. 각지의 다른 연극의 ‘틀’ 속에서 태어난 「삼국지」 무대는 삼국지 수용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한 일 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대에 중국으로 여행한 일본인은 현지의 견문 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대부분 문장 형태이지만 사진이나 그림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경극을 비롯한 여러 전통 연극은 가무적 요소가 강하며 독특한 분장에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이나 모자류 착용 등으로 시각과 청각 양면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므로 외국인의 흥미를 끌어 사진이나 회화의 주요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연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화가 후쿠다 비센(福田眉仙, 1875~1963)과 지질학자 후쿠치 노부요(福地信世, 1877~1934)가 그린 중국 전통 연극의 상연 풍경을 주제로 한 회화 및, 일본화가 와카야기 류코(若柳柳湖, 1888~1983)에 의한 ‘검보(瞼譜; 경극의 분장법)’와 무대장면의 화집도 당시의 극장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이 그림들은 주로 1920년대 전후에 그려진 것입니다. 근대의 경극 무대 관련 영상은 배우 중심의 흑백 브로마이드가 많으며, 이러한 극장과 상연 풍경의 생생한 분위기를 선명하게 전하는 자료는 드물기 때문에, 이는1920년대 전후 전통 연극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삼국지 관련 공연과 인물 회화는 이들 세 사람 작품의 공통된 주제처럼 다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당시 중국에서 「삼국지」 이야기를 상연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았던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배우 개개인이 가창력을 발휘할 수 있고 격투 장면이 많은 연극 『삼국지』가 서민을 얼마나 열광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의 「삼국지」 이야기는 중화권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소설, 영상, 연극 작품으로 다수 제작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작품들은 각 매체의 특장점을 살려 다양한 「삼국지」의 세계관을 표현해 왔습니다. 소설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 영상작품으로는 1982년부터 방영된 NHK 인형극 『삼국지』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삼국지』(시나노기획 제작, 도에이(東映) 배급)가 일본 내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소설이나 영상과는 다른 정취를 자아내는 무대에서도 일본의 독자적인 해석에 의한 「삼국지」를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미 에도시대인 1737년에 가부키 작품으로 에도 카와라자키(河原崎) 극장에서 상연된 『윤월인경청(으루우즈키 니닌카게키요; 閏月仁景清)』에서 장비 역으로 ‘악칠병위경청(아쿠시치뵤에 카게키요; 悪七兵衛景清)’과 관우 역으로 ‘전산중충(하타케야마 시게타다; 畠山重忠)’을 등장시켰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가부키 18번의 하나인 『관우』로 상연되고 있습니다. 근대 작품으로는 중국 연극에 정통한 이케다 다이고(池田大伍, 1885~1942)가 여러 설이 있는 '관우의 초선 죽이기' 스토리를 부연하여 『요부(妖婦)』라는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작품의 소재도 그의 「삼국지」 인물 파악 방식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한, 최근에 가장 주목받은 「삼국지」 무대는 2대 이치카와 엔오우(市川猿翁)가 1999년부터 다양한 도전을 시도한 슈퍼 가부키 『신 삼국지』 3부작일 것입니다. 여성으로 설정된 유비와 제갈량의 연인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삼국지」 해석과 스펙터클한 무대가 어우러져, 신세기의 개막에 호응하듯 참신한 시점으로 「삼국지」를 다시 묘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