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드라마’는 일본식 영어다. 홈드라마는 미국 시트콤(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장르로서 일본 텔레비전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일본에서 홈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에는 전후 부흥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 다양한 문제에 맞서 감정적으로 충돌하면서도 유대를 재확인하며 극복하는 모습이 밝고 민주적인 새로운 가족상으로 제시되어 지향할 모델이 되었다. 텔레비전은 일본이 고도 성장기로 돌진하는 가운데 순식간에 보급되어 온 가족이 안방에서 보는 일상적인 미디어로 정착하였다. 홈드라마는 직접적으로 가족 행복 본연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텔레비전 방송 시작 후 70여 년이 흐르는 사이에 가족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1963년에는 ‘핵가족’이 유행어가 되었다. 70년에는 <수하물 소하물>(お荷物小荷物) 같은 오키나와 문제를 담은 실험적인 홈드라마도 등장했으며, 70년대 후반부터는 야마다 다이치(山田太一)와 무코다 구니코가 <물가의 앨범>(岸辺のアルバム)과 <아수라처럼>(阿修羅のごとく) 등으로 가족의 비밀이나 붕괴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각본을 썼다. 1983년에는 가마다 도시오(鎌田敏夫)가 <금요일의 아내들에게>(金曜日の妻たちへ)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불륜을 다뤘다. 그 후로도 홈드라마는 형태를 바꿔가며 제작되어, 최신작으로 올 초 방송된 구도 간쿠로(宮藤官九郎) 각본의 <우리 집 이야기>(俺の家の話)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일본의 홈드라마를 60년 이상 견인해 온 것이 이시이 후쿠코다. 이시이는 야마다와 무코다의 각본을 포함해 다채로운 드라마를 제작해 왔지만, 역시 중심 활동은 히라이와 유미에와 하시다 스가코와의 작업일 것이다. 최고 시청률 56.3%를 기록해 ‘도깨비 프로그램’이라 불리며 대히트한 히라이와 각본의 <고마워>는 모녀 관계를 중심으로 쇼와 시대의 가족과 지역 주민 간의 농밀한 관계를 밝게 그렸다. 스페셜 에디션을 포함해 약 30년간 방영된 하시다 각본의 <세상살이 원수 천지>는 누구나가 짐작하는 가족을 둘러싼 엇갈림과 마찰을,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그려내 헤이세이 시대의 가족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시이 드라마도 시대와 함께 변모해 왔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정’(人情)이라는 어딘지 그리운 정감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다양한 사정이나 어쩔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해 관계를 맺으려 노력해 왔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일본 사회를 엄습하고 코로나 사태로 강요된 자숙으로 사람과의 관계가 희박해진 레이와 시대에, 이시이 드라마가 그려 온 ‘인정’이 어떻게 업데이트되어 가는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