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쓰야쿠 미노루(別役実)는 1937년 4월 6일 만주국 신경특별시(현재의 중국 장춘시)에서 태어났다. 45년 8살이 되기 직전 아버지를 여의고 다음 해 친가인 고치(高知)현 고치(高知)시로 귀환한다. 귀환 시 생긴 1년간의 공백으로 1년 늦게 소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후 외가인 시즈오카(静岡)현 시미즈(清水)시에서 생활하다 48년 11살 때 나가노(長野)현으로 이사하여 나가노시립 죠야마(城山)소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고등학교 졸업까지 나가노에서 살게 된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만두 가게가 궤도에 올라 경제적으로 안정됨과 동시에, 좋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 문예와 회화에 열중하며 소박하고 평온한 생활을 했다.
소학교 5, 6학년 때의 문집을 보면 베쓰야쿠가 일찍부터 뛰어난 글재주를 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집 『버찌』에 실린 글을 보면 베쓰야쿠는 4학년 때부터 시를 자주 쓰게 됐다고 한다. 시를 쓸 때는 미리 작품의 짜임새를 검토한 뒤에 시작했다는 말대로 이 시기의 시나 산문은 수준 높은 구성력이 눈길을 끈다. 6학년 때 쓴 시 「잠자리」는 잠자리가 머문 풀의 미세한 흔들림을 적어 놓은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 버릴 수 있는 동식물의 섬세한 숨결을 정성껏 묘사하려는 자세는 극작에서도 일관된다.
후에 그의 극작품하면 떠오르는 일상의 풍경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이 무렵 이미 싹텄다는 것을 6학년 때 쓴 두 개의 산문 「어느 아주머니」와 「한 개의 귤」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아주머니」는 심부름 간 우동집에서 있었던 일을 적은 것이다. 베쓰야쿠는 중년 여성 점원의 목소리가 낮고 쓸쓸하게 들린 것에서 이 여성이 의지할 데 없는 고독한 운명을 짊어진 것이 아닌가라고 상상하자, “참을 수 없이 불쌍해져 내 행복을 나누고 싶어졌다”고 회상한다. ‘불쌍하다’ 는 그의 극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타인의 불행한 처지를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위선적인 말로 이용될 때가 많다.
「어느 아주머니」의 ‘불쌍하다’에 그러한 함축은 없지만, 그 후 1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베쓰야쿠 안에서 이 천진난만한 감정을 경고하는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것이 졸업 문집 『산들바람』에 실린 「한 개의 귤」이다. 베쓰야쿠는 심부름 도중, 한 손으로는 작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등에는 갓난아기를 업은 중년 여성이 진흙탕 속에서 귤을 하나 줍는 것을 목격한다. 그 모습을 미천하다고 느낀 베쓰야쿠는 이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귤을 정성스럽게 닦아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신성한 것을 보는 것처럼, “바치듯이 해서”라고 묘사하면서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저 귤은 행복한 귤이라고, 단지 그렇게 생각했다.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 하늘에 귤을 든 남자아이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베쓰야쿠 작품에는 종종 동정에 의한 구원의 손길을 거절하고 차별과 가난을 묵묵히 참고 견뎌내려는 인물이 등장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소년 베쓰야쿠 안에, 이후의 창작에서 끊임없이 질문해 온 하나의 물음이 싹튼 순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