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쓰야쿠 미노루(別役実)는 1951년 나가노(長野)시립 야나기마치(柳町)중학교에 입학하여 미술 시간에 우에하라 쇼조(上原正三) 선생님을 만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둘도 없는 친구로 돈독한 교류를 맺게 되는 동급생 오가사와라 마사오(小笠原昌夫) 씨와 함께 나가노 시내를 돌며 경쟁하듯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될 때마다 우에하라 선생님의 강평을 들으며 베쓰야쿠는 화가에 뜻을 두게 된다. 이 무렵 일기에는 오가사와라 씨와 함께 선생님 댁을 방문해 그림을 둘러싸고 토론한 내용이 적혀 있다. 우에하라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사과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씀을 베쓰야쿠는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54년 나가노 기타(北)고등학교(현재의 나가노고등학교)에 입학한 베쓰야쿠는 미술반에 들어가지만, 오가사와라 씨에 의하면 소설도 병행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가사와라 씨와는 고교 2학년 때 동인지 『하동(河童)』을 발행한다. 동인지 형식을 갖추기 위해 두 사람이 여러 명의 필명으로 나눠 쓰는 등의 고충이 있었으나, 1호를 200부 정도 인쇄하여 급우와 다른 학교의 문예부 등에 팔아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베쓰야쿠의 필명은 고무라 요코(古村葉子), 미즈하라 미즈히코(水原水彦), 구레하 신지(呉羽真二), 모리 요시오(森芳夫)다. 『하동(河童)』은 2호로 폐간했지만 베쓰야쿠는 그 후에도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문예반이 발행하고 있던 문예지『이즈미(いづみ)』에 게재된 「버선(足袋)」은 한 소녀를 마음에 둔 ‘그’의 풋풋한 심정을 과잉된 자의식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 낸 짤막한 작품이다.
베쓰야쿠는 고교 졸업 후 나가노를 떠나 도쿄로 거처를 옮기지만 오가사와라 씨와의 교류는 이어졌다. 당시 베쓰야쿠가 오가사와라 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깊은 우정이 담겨있다. 오가사와라 씨가 병으로 요양 생활을 할 때는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농담 섞은 편지를 여러 통 보내기도 했다. 때로는 시를 첨부해 감상을 구하기도 하고 극단 자유무대 활동을 접고 집필에 전념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러한 편지에서 오가사와라 씨가 베쓰야쿠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