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24년(1949), 여러 단체가 단합하여 극단 신파가 탄생한다. 하나야기 쇼타로와 초대 미즈타니 야에코를 간판으로, 초대 기타무라 로쿠로를 대들보로 삼았다. 신파는 각지의 대극장에서 매달 공연을 올리는 당대를 대표하는 연극의 한 장르였다.
쇼와 20년대 후반부터 초대 미즈타니 야에코와 이시이 간(伊志井寛) 콤비는 종래의 ‘신파 비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파 희극’을 모색했다. 쇼와 27년(1952) <아들의 청춘>(息子の青春: 하야시 후사오(林房雄) 원작)은 신파의 홈드라마 노선을 개척한 작품으로 이후 히트작이 이어진다.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의 <사자에상>(サザエさん) 무대화(쇼와 30년)도 그 계보를 이어 인기 만화에 주목한 선견성을 보여준 일례가 될 것이다. 후년에는 야마토 와키(大和和紀)의 <하이카라 씨가 간다>(はいからさんが通る)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 전에 신파가 먼저 초연(쇼와 53년)했다.
동시대의 풍속과 세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도 건재했다. 긴자(銀座) 바 마담들의 치열한 영역 다툼을 다룬 가와구치 마쓰타로(川口松太郎) 원작 <밤의 나비>(夜の蝶, 쇼와 32년)를 필두로 하는 ‘긴자 시리즈’는 고도 경제성장기 ‘화류계물’(花柳界物)의 변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파 ‘화류계물’를 대표하는 이즈미 교카 작품이 쇼와 20년대에 교카와 교류가 깊었던 초대 기타무라 로쿠로에 의해 거듭 상연되었다. 또한, 교카의 또 다른 한편에 있는 탐미적이고 기묘한 세계―<천수 이야기>(天守物語)나 <해신별장>(海神別荘)을, 희곡 발표로부터 수십 년 뒤, 하나야기 쇼타로와 초대 미즈타니 야에코가 초연한 것도 신파의 다면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쇼와 40년(1965)에 하나야기 쇼타로가 타계하고, 초대 미즈타니 야에코가 대들보가 된다. ‘온나가타의 신파’에서 ‘여배우의 신파’로의 본격적인 변화는 2대 미즈타니 야에코, 나미노 구리코(波乃久里子) 등에 의해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다.